"그렇다. 오히려 우리에게 속여주기를 바라는 것은 바로 그들이었다. 축복이면서도 재앙이기도 한 나일의 범람은 예로부터 여러 가지로 설명되어 왔다. 아주 옛날에는 누우나 아피의 권능에 의해서였으며, 한때는 세라피스의 축복이었다. 지금은 이시스의 눈물로 보고 있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넵티스와 오시리스의 밀통에서 흐른 정수 때문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길이 열리지 않아 첫째 폭포 위의 우기를 알지 못했던 시절에도 그러한 설명을 참으로 믿었던 사람은 드물었을 것이다. 다만 그렇게 믿고 싶었을 뿐이다. 생각해 보아라. 세상이 무자비하고 종잡을 수 없는 자연의 폭력에 맡겨져 있다고 믿는 것보다는 제사로 그 노여움을 달랠 수 있고 찬미와 기구로 축복을 빌 수도 있는 신의 질서에 의해 다스려진다고 믿는 쪽이 저들에게 얼마나 더 큰 위로와 희망을 줄 것인가를. "
"우리가 천지창조라는 그 번거로운 작업에 착수한 것은 유일자로서의 외로움과 끝 없는 정적, 그리고 오랜 무위에 뜻하는 것은 아니다. 틀림없이 창조는 우리를 위해서 있었지만, 우리도 창조를 위해서 있었다. 창조는 우리의 권리이고 의무였다. "
" 그 신은 우리들의 오랜 구도의 결정이자 이성의 최종적 추출물이었소. 대충은 읽었을 줄 믿지만- 선악의 관념이나 가치판단에 관여하지 않는 신, 먼저 있는 존재를 뒤에 온 말씀으로 속박하지 않는 신, 우리의 모든 것을 용서하고 시인하는 신, 천국이나 지옥으로 땅 위의 삶을 간섭하지 않는 신, 복종과 경배를 원하지 않고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지 않는 신, 우리의 지혜와 이성을 신뢰하며 우리를 온전히 자유케 하는 신-."
" 우리는 무슨 거룩한 소명이라도 받은 것처럼 새로운 신을 힘들여 만들어냈지만, 실은 설익은 지식과 애매한 관념으로 가장 조악한 형태의 무신론을 얽었을 뿐이라고. 우리가 어김없이 신이라고 믿었던 것은 기껏해야 저 혁명의 세기에 광기처럼 나타났다가 조롱 속에 사라진 이성신이거나 저급하고 조잡한 윤리의 신격화에 지나지 않았다고. 그런 다음 과장된 참회와 더불어 십자가 아래로 돌아가겠다고 했소. "
이문열, 사람의 아들 中
"우리가 천지창조라는 그 번거로운 작업에 착수한 것은 유일자로서의 외로움과 끝 없는 정적, 그리고 오랜 무위에 뜻하는 것은 아니다. 틀림없이 창조는 우리를 위해서 있었지만, 우리도 창조를 위해서 있었다. 창조는 우리의 권리이고 의무였다. "
" 그 신은 우리들의 오랜 구도의 결정이자 이성의 최종적 추출물이었소. 대충은 읽었을 줄 믿지만- 선악의 관념이나 가치판단에 관여하지 않는 신, 먼저 있는 존재를 뒤에 온 말씀으로 속박하지 않는 신, 우리의 모든 것을 용서하고 시인하는 신, 천국이나 지옥으로 땅 위의 삶을 간섭하지 않는 신, 복종과 경배를 원하지 않고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지 않는 신, 우리의 지혜와 이성을 신뢰하며 우리를 온전히 자유케 하는 신-."
" 우리는 무슨 거룩한 소명이라도 받은 것처럼 새로운 신을 힘들여 만들어냈지만, 실은 설익은 지식과 애매한 관념으로 가장 조악한 형태의 무신론을 얽었을 뿐이라고. 우리가 어김없이 신이라고 믿었던 것은 기껏해야 저 혁명의 세기에 광기처럼 나타났다가 조롱 속에 사라진 이성신이거나 저급하고 조잡한 윤리의 신격화에 지나지 않았다고. 그런 다음 과장된 참회와 더불어 십자가 아래로 돌아가겠다고 했소. "
이문열, 사람의 아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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